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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에는 내고향 춘향골 남원에 갔었다. 현충일이 월요일이라 토요일부터 황금 같은 3일간의 연휴라 어디를 갈까 고심하다 난 애들을 데리고 지난겨울에 경락받은 논과 밭을 둘러볼 겸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남원에 내려갔다.

여러 가지 먹을 음식들을 사가지고 집에 갔더니 이미 큰형 가족들이 와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바로 밑 여동생의 가족과 막내 여동생의 가족이 도착했다. 모처럼 만에 만나 시끌벅적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작은형 가족이 도착했다. 약속도 안했는데 5남매 가족이 모두 모였다. 다모이면 25명인데 군대 간 조카 둘을 제외하고 23명이 모였다. 모두들 지난 겨울에 공동으로 경락받은 논밭을 둘러볼 겸 홀로 계신 어머님을 뵈러 왔는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전체가 모이는 때는 1년에 4번에 불과하다. 다들 각자의 생활이 있다 보니까 설 때와 추석 때 어버이날 그리고 아버님 제사
때만 함께 모이고 평상시는 어머님 뵈러 왔다 우연히 한두 가족씩 만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매로 받아놓은 논밭 때문에 약속이 없었는데도 모두 모인 것 같다.

어버이날 이후 한 달 만에 만난 우리는 각자가 준비해 온 여러 가지 음식들을
해먹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얘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우리는 집 뒤 언덕 너머에 있는 밭으로 갔다. 논은 경작 할 수가 없어
임대해 주고 밭만 어머님이 자식들 반찬거리 해 주려고 짓고 계셨는데 고추 상치
솔 쑥갓 도라지 땅콩 완두콩 토마토 오이 호박 가지 감자 등 골고루 한 두렁씩
심어 놓으셨다.

어머님이 이미 잘 다듬어 놓아 별로 일할 것이 없어 각자 일하는 시늉만 내다가
마침 밭 옆에 철늦게 올라온 고사리들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고사리를 꺽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들이야 많이
꺽어 보았지만 얘들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서툴렀다. 그렇지만 신이 나는지
사촌들끼리 서로 누가 많이 꺽나 내기하며 얼굴에 온통 땀이 흐르는데도
피곤한줄 모르고 하나라도 더 꺽으려고 기를 썼다. 너무도 행복하고 다정다감한
모습들이었다.
전체 꺽은 것을 모아보니 비료포대로 한 포대가 넘었다.

준비해간 새참을 먹다 보니 옆에 새까만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뽕나무가
몇 그루 눈에 들어왔다. 옛날 우리가 클 때는 누에를 많이 키워 밭마다 뽕나무가
많았고 당시 먹을 것이 부족했던 우리들은 뽕나무 오디가 새까맣게 익기 전에
빨갈 때부터 따먹고 다녀 새까맣게 익은 오디가 많지 않았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뽕나무들은 가지를 쳐내지 않아 엄청 크게 자라 있었다. 또한 마침 오디가
익는 철이고 누가 따먹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새까맣게 익어서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어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나무에 달라붙어 30여년 만에 오디를 따먹었다. 오디를
먹어보지 않았던 얘들은 처음엔 주저하더니 먹어보라 권하자 한번 먹어보고는
맛이 있었던지 모두 달려들어 따먹었다. 시골 출신을 부모로 두어 입맛에 맞았나
보다. 이빨과 입 주위는 말할 것 없고 손까지 오디물이 들어 파랗게 되었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부르자 이제는 술 담근다고 저마다 모자를 벗어 따기 시작했다.
모아보니 한말 정도 되었다. 모두들 즐거워했다. 시골 출신들은 그 모습이 상상이
될 것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남매들 모두 어릴 적 추억을 되새겨보는
의미있는 하루였다.




























내가 경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의 일이다. 물론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작년 일이다. 대학 졸업 후 모 생보사에 18년간 근무했던 나는 투자의 수단으로는
보험과 적금 주식밖에 몰랐고 부동산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더구나 경매는
건달들이 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뿐이었다.

그러다 명예 퇴직하게 되었고 할 일이 없어 옛 직장동료의 중개사 사무소에 놀러
다니다보니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경매도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여
몇 번 실전에 참여하여 낙찰 받아 다시 되팔아 얼마간의 수익을 내었다.

덕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했고 얼마 전에 건설회사에 취직해 관리파트에서
일하고 있어 부동산에 관련된 일이 많아 그때 익힌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몇 번 성공을 하기는 했어도 경매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하면할수록 권리관계
파악이 어려웠다. 작은 실수는 곧바로 금전적 손실과 연결되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줄 알면서도 막상 입찰하려면 혹시 내가 잘모르고 있는 것이 있지 않나
생각되어 입찰을 포기 하여 기회를 놓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굿옥션을 알게 되었고 이용해 본 결과 법원에 비치된 매각물건명세를
법원에 갈 것 없이 파악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 되어 있었다. 또한 잘 알 수
없었던 권리관계를 명쾌하게 분석해 놓아서 경매 참가여부를 정확히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한 상담시 신속하고 너무나 성실하게 답변해주어 경매물건
검색과 분석하는데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굿옥션을 안후로는 관심물건 권리분석이 정확하게 되므로 원하는 물건은 주저
없이 응찰하게 되고 따라서 당연히 수익률이 매우 높아 졌다. 그중 최고의
수익을 내고 우리 남매들을 우애할 수 있도록 맺어준 경매 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굿옥션 사이트에서 이 곳 저 곳 물건을 검색 하던 중 우리고향 남원지원을 발견하고
물건을 살펴 보던 중 우리 마을 물건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마을출신 교장
퇴직하신 분이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마을 여러 어른들의 돈을 빌리고 부도를 내어
감옥가고 집과 토지가 경매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고향 마을이라 당연히 관심이 있어 진행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밭5필지가
함께 한 물건 번호로 올라와 있었고 집은 매각기일이 한번 늦게 별도의 물건으로
올라와 있었다. 밭 물건은 5필지 2,800평인데 4필지 2,750평은 밭으로 사용되고
있고 1필지 50평은 실제로는 별도 매각물건인 집에 속한 대지 의 일부였다.

괜찮은 물건이라 생각하고 분석에 들어갔는데 고향마을이고 어머니가 살고 계셔
경매물건의 가격과 가치를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곳은
면소재지라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 아니면 그곳 정보를 잘 몰라 일반 투자자들은
쉽게 응찰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경매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입찰에 참가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으로 분석하였다.

곰곰 생각하니 나는 농사를 지을 줄 몰라 고향땅이 별 필요가 없었고 우리 5남매의
공동 재산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는 변변한 땅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생활을 했었고 우리 5남매는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지금은 남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사는 곳에는 부동산을 사 놓았지만 고향땅에는 별 투자성이 없다고 땅을 사 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고향땅에 땅을 공동으로 구입해서 공동으로 해놓으면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형들과 동생들에게 연락해서 뜻을 전했더니 모두들 대 찬성 이었다. 상의한
끝에 집은 필요 없으니 땅 물건을 똑같이 부담해서 구입하되 형 이름으로 낙찰 받기로
결정하였다.



그곳은 거래시가가 평당 5만원 선이었다 . 따라서 매각물건의 시가는 1억4,000만 정도
되었다. 그런데 감정가는 평당 2만 5천원 정도 나왔다. 고맙게도 평가사가 상당히
낮게 평가 했다.(그 곳 사정을 잘 몰랐겠지)

두 번 정도는 유찰 될 것으로 생각하고 법원에 가지 않고 기다렸는데 예상대로 역시
두 번은 유찰되었다.
3번째 매각 기일에 참여 할 것인가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가의 절반인 평당
13,000원선에 최저 입찰가가 정해져 있었고 어머니 에게 마을 분위기를 살펴보라고
한 결과 경매에 넘어간 지는 모두 알고 있었고 마을 이장이 관심이 있단 얘기를 하였다.

고심 끝에 3차 매각기일에 일단 법원에 가서 이장이 왔으면 입찰할 것이므로 참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한 번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당일 날 일찍 가서 살펴보니 이장이
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한 번 더 기다리기로 응찰하지 않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응찰하지 않아 유찰되었다.

4번째 매각 때는 이미 최저 가격이 평당 10,000원대로 떨어져 있어 그 정도 가격이면
타지 사람들도 들어올 가능성이 너무 많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또 수소문해 본
결과 동네 여러 젊은 사람은 물론이고 면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무조건 응찰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얼마에 응찰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날 아침 분위기를 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형과 함께 법원으로 향했다.

법원에 도착하니 동네 이장이 와 있었고 날 보고 어찌 왔냐고 하며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형 말이 면내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했다(난 어릴 적 고향에서 나와
동네 사람 외 면 사람들은 잘 모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 사람들이 경매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다.
경매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입찰가를 쓰는데 있어 대개 두부류다. 하나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쓰던가 아니면 최저 입찰가격에 가깝게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기는 의외로 쉽다. 일단은 대부분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인 것으로
판단했다. 형제간의 공동재산을 만드는 것이라 반드시 낙찰받아야 하므로 신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러 사람이 응찰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그중1명 정도는 경험있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응찰했다.

그래서 3차와 4차가격의 중간선이 넘는 3301만원 쓸려다 혹시 몰라 3311만원에
응찰했다(평당11,800원).역시 시골 법원치곤 많은 총8명이 응찰 했다. 자신이 있었었지만
막상 8명이 불려나가자 불안했다.(물론 형이 불려나가고 난 지켜보고 있었음) 긴장감이
나돌았다. 앞에 8명이 나란히 서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도
손에서 땀이 났다.

예상대로 6명은 최저가 2,800만원에서 3,100만원사이에 응찰 탈락했다. 7번째로 형 봉투를
열어 모두 들어간 다음 형과 동네 이장 둘이 남아 마지막으로 이장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형이 이장 응찰서를 본 순간 나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됐구나 생각했다. 얼마를
썼는지 궁금했다. 법정에서 내려오는 이장한테 물어보니 약이 올라 죽겠다 했다.

이장은 경매 경험이 있었고 2,800만원 쓸려고 왔는데 아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안되겠다
싶어 나름대로 머리를 써 3201만원을 쓸려다 나를 보고 혹시 몰라 넉넉히 쓴다고
100만원을 더해 3301만원을 썼다 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10만원 차이로 경락이
결정된 것이다. 나야통쾌했지만 상대는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8명중에서 낙찰된
것만으로도 기쁘기 한이 없는데 10만원 차이로 낙찰되니 말 그대로 짜릿한 전율이 왔다.

그때부터 이장은 되팔라고 졸라 대었다. 이장은 영농후계자라서 농지를 구입하면 요즘은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온다 한다 .따라서 평당12,000정도에 사면 오히려 돈이 남는다
한다. 그래서 동네 다른 청년들이 응찰하려는 것을 이장인 자기가 응찰 할 테니 하지
말라 사전에 정리해놓았고 우리는 거기에 살지 않고 농사를 짓지 않으니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나 억울해 했다. 그렇다고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5남매가
공동으로 처음 마련한 땅을 팔수는 없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거듭거듭 미안하다하고
근처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밥을 사는 것으로 대신했다.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고 모든 형제들에게 전하니 모두들 좋아 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으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거저 샀다고 돈벌었다며 축하해
주더란다.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을 뒤 산골짜기에 상당히 큰 농업용 댐을 막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댐 뚝 중심부에는 그냥 흙이 아니라 황토 흙을 넣어야 물이 새지
않고 견고하다고 황토 흙이 필요해 근처의 논밭의 흙을 사가면서 황토를 채취해 가고
원상 복구 해준다며 팔라는 것이다.

형제들은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게 원상복구 해줄까 의구심이 들어 망설였지만 제대로
원상복구 해준다 하여 결국은 흙을 팔기로 했다. 일반 흙보다 더 준다하며 평당 10,000원을
주었다. 파간 후 원상 복구했는데 흙을 파가기 전에는 굴곡이 있었는데 바닥도 평평하고
고르게 해주었고 객토효과도 있어 훨씬 좋았다.

결국 평당 시가 50,000원정도 감정가 25,000원의 토지 2,800평을 평당 11,800원에 사서
흙을 평당10,000원에 팔았으니 평당 2,000원 미만에 산 셈이다. 다시말하면 시가
1억 4,000만 정도의 2,800평 땅을 550만원에 산 셈이다. 거기다 집터에 들어가 있는
대지 50평은 집을 낙찰 받은 사람과 협의 중인데 상당한 가격을 받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2,750평을 거저 주운 거나 마찬 가지다.

형제들 5명이 똑같이 800만원씩 갹출한 4,000만원으로 경락대금과 등록세 취득세
등기비용 내고 남는 것은 공동자금으로 쓰기로 했는데 흙매매대금 2750만원을 받으니
남는 것이 3,000만 원이 훨씬 넘었다. 형제들은 이것을 나누지 않고 공동자금으로
하여 앞으로 서로간을 위해 남매계 자금으로 쓰기로 하였다. 땅은 땅대로 마련하고
남매계자금은 자금대로 쉽게 마련한 셈이다.

우리 남매들은 만나기만 하면 통쾌했던 그이야기를 즐거히 이야기하며 좋아한다. 그리고
지난주 만남을 계기로 밭 하나만은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 맡기지 말고 수시로 자식들
데리고 와서 직접 농사지으며 체험도하고 사촌들 간에 친형제 못지 않는 동기간의 정을
느낄 수 있게 하자 했다.

옛날에는 6촌만 돼도 상당히 가까운 친척이었으나 요즘은 옛날과 달라 서로 객지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까 4촌도 옛날의 6촌 보다도 더 먼 친척이 되어버렸다.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이며 자주 만나지 않는 것은 만남의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경락받은 토지는 얼마에 낙찰 받았고 형제간의 공동 재산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요즘 사회의 트렌드에 편승해 멀어질 수 밖에 없는 형제간 사촌간의
정을 끈끈하게 묶어두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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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자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 심 재 경   님
Posted by 미래사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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