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권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나를 있게 만들었다
유치권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나를 있게 만들었다.
나는 요즈음 유치권이라는 단어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본다.
그 유치권이라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에 나는 높이 27미터의 레미콘
믹서기 공장을 지어주고도 건축비용을 결재 받지 못하였다.
사기꾼에게 걸린 것이다.
그 사기꾼은 공장을 짖는 과정에 공장을 남에게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장인체로 행동하며 분야별 건축업자들이 그 사실을 모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 토록 큰 공사를 하면서 돈 몇 천만원 정도를 떼어먹기야 하겠는가 하는게
당시 공장 건축에 참여한 분야별 업자들의 보편적인 생각들이었다.
이미 그 사기꾼은 자기 재산은 부인 명의로 다 옮겨 버려놓고 남들에게만
사장이였지 내막은 빈털터리였다. 그리고 그 자는 건축 소개업자를 꼭 공무원이나
신용 좋은 사람을 통해서 공사를 부탁했기에 사람들은 소개자를 믿듯 사장을
믿게되고 중도금이 나오지 않아도 별 의심 없이 공사를 해나갔다.
그때 분야별 업자들이 가압류한 것이 무려 25명이나 되었다. 나는 가압류
하려다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많았고 이미 근저당을 한사람들도 돈을 다
못 받을 정도라는 것을 들으면서 가압류를 할 법무사 비용도 없고, 한다고
해도 못 받을 것 같아 포기해버렸다.
그때 상담했던 법무사가 유치권을 신청하면 된다는 그 말이라도 했으면
오히려 돈을 더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그 법무사의 이야기중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말은
“법은 보호를 요청하는 자에게만 보호를 해준다”
는 말을 듣고 그 동안 법은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보아온 나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무책임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
나는 경매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상태를 알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자세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속단해버린다. 내가 그 전형적인 바보 같은 행동을 그렇게 했었다.
그때 같이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의 사장들이 “더러운 놈한데 걸렸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하는 그 정도였고, 어떻게든 법으로 끝까지 싸워서
돈 찾을 생각을 하지않고 다른 일 한건 더해서 본전을 찾는 것이 났다는
그런 생각들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 공장의 경매 건으로 유치권 신청했다는 글귀를 하나도 못 보았으니 그
25명중 유치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였다.
지금 문경의 ** 레미콘이 어떤 이름으로 운행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공장은 그렇게 유치권 신청하나 없이 경매로 넘어갔다. 문제는 지방에
살다보니 수준낮은 법무사들의 지도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지도란게
오히려 건축업자 죽이는 것이었다.
나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한 것은 인천 지방법원에서 굿옥션 소식지를
돌리는 어느 어여쁜 여자분께서 꼭 한번 보라는 부탁을 자꾸만 거절할수 없어
공짜로 하루는 접속할 수 있다는 그 말에 이것은 어떤가 싶어 보다가 요금은
싼데 다양하게 많은자료를 준비한 것을 보고
아~ 다음번에는 굿옥션으로 바꿔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트에서
체험 사례를 공모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일 같은 멍청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오히려 남에게
당당히 밝히면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좀 창피스럽더라도, 누구나 이러한 경험을 할수는 있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여
앞으로 나가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발전의 기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지금도 유치권에 대하여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공사 사기건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경매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황금 방망이 같은 유치권 권리를 써 먹어 보지도 못하고 무지해서 멍청하게
당하면서 느낀 것은 법을 모르면 자기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고통을 당하게 한다는 거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법을 우리 가까이로 있게해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미 나의 고통은 그 전해부터 있어왔다 하필이면 내가
처음으로 황토 주택을 짖는시기에 비가 30년만에 긴 장마를 만나서 거의 넉다운
상태로 몰렸었는데 그 레미콘 공장사건으로 나는 아웃되고 만 것이다.
IMF 때도 유럽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던 나는 그 두개의 사건으로
완전하게 거지가 되고 말았다.
전화세 전기세도 밀리고! 보증선 것 대출 한것 등이 몰려들고 품값 달라
자재값 달라 더 이상 나는 예천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형편이 어려워지니 죽을까도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 같고
죽을 생각으로 살면 못 할일이 없겠다 생각했다. 그때 후배 한 사람 이
경매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경매를 배워보겠다고
경매 법정에 몇 번다녀보니 세상에 이렇게 돈이 많이 되는것도 있구나 싶어서
바로 경매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땅과 집을 팔아 정리해 약 4천만원 정도
가지고 경매에 뛰어 들었다.
처음으로 여주 법원에서 경매에 참여하여 아파트 하나를 낙찰 받았는데 차점자와
300만원정도 차이가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묻지마 경매 였었는데 그래도 그 물건이 내최초의 작품이었다.
그것도 나는 보증선 것 때문에 혹시나 압류가 들어 올까봐 딸의 이름으로 경매
했는데 내 운명이 그때부터 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낙찰후 딱 17일만에 그 아파트에 가보니 그집만 전기 계량기가 돌지 않았다.
설마 이거 전문가에게 걸렸는가 싶어서 벌컥 겁이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이 이사 갔을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는데 그 이튿날 잔금을 넣고 열쇠
전문가를 불러서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종이 몇 장만 있고 깨끗하게
이사가고 없었다.
왠지 나는 그 순간부터 이제는 나에게도 그 악운이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나는 하루가 급하다는 생각에 바로 공사에 들어가기로 하고
오래된 몰딩을 뜯어내고 페인트를 하고 도배지 사업을 하는 여동생에게
도배일을 부탁하고 나는 3일만에 입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낙찰일로부터 정확하게 20일만이었다. 아마 대한민국 경매
역사상 그렇게 빨리 입주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혼자서 생각해봤다.
내가 경매를 맨 처음 하면서 생각한 것은 薄利多賣였다. 남들은 한건
크게 해서 돈 많이 벌자 이런 주의지만 나는 남들과 같이 생각으로 하면
돈 못 벌꺼라 생각했다. 이것을 두달 동안 잠 안자고 노력한 결과라 생각한다.
나는 그 아파트에 입주 하면서 바로 광고를 내고 판 것은 한달 정도
되었을 것 같다.
매매로 인한 수익이 경매 가격의 절반이 되었다.
그로부터 나의 부도덕하며 불법적인 아니 대한민국 모든 부동산 업자들의
전매 특허인 불법 신고를 하게 되고 최초의 범법자가 되었다.(이것은 소설이다. )
어떻든 나는 그 최초의 아파트 하나 아파트를 그렇게 팔고 사실상의 경매
사업자로 살겠다는 강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통하여 나는 확신을 ,,
나같은 건축업자가 경매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그후 나는 여주 남한 강가의 농가 주택을 낙찰 받았고 그때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 고수들이었다.
영업용 택시하다가 집행관 태워주면서 알게된 집행관덕분에 200억을
벌었다는 김모씨 70세정도 또 지금 조모씨 라는 이름으로 경매관련
책을 써서 명성을 날리고 있고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도 그중에
있었는데 그 최초의 전투에서 나는 그분들을 제치고 낙찰되었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였는데 내가 36.115.000원이었는데 조모님 고수께서는
전번 최저가의 30만원 이상을 썼고 나는 3일간 잠 안자고 생각하며 판단한
것이 이런 좋은 물건을 고수들이 알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수들이 몰라서 그렇지 알면 이거 분명 고수들이 전번 최저가 이상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잘못하면 일을 그릇칠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차점자보다 50만원을 더
써넣어서 낙찰이 됐다. 경험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한건 한건마다 그렇게
신중하게 하면 되는데 8개월이 다되어가는 과정에 생각해보면 벌서
초심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어떻든 나는 그 경매건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다. (여주지법.2004타경2064)
물건은 남한강가에 있으면서 아침 노을이나 저녁 노을이지면 분위기가
죽이는 곳이다.
그리고 모래 사장이 넓어서 대규모 행사도 가능한 강변이 있었다.
조선시대 때에는 강원도의 나무꾼들이 나무를 실고 와서 여주쌀을 실어가는
나룻터로도 매우 이름 있는 양화 나룻터라는 곳이 바로 앞이었다.
그 집은 일층 집이었지만 이층을 올리고 강변으로 창을 내면 그 분위기 또한
워커힐 못지 않을 정도였다. 건축업을 하다 보니 저 물건을 어떻게 변화시키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물건을 너무나 갇고 싶었다.
사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나의 수준을 벗어나는 것임을 나는 한참 고생을
한 후에 알게 되었다.
건축업을 하다보니 저 물건을 어떻게 변화시키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그 물건을 너무나 갇고 싶었다. 사실 그러나 그것은 이미나의 수준을
벗어나는 것임을 나는 한참 고생을 한후에 알게되었다.
어떻든 낙찰된 후 찾아가보니 그 집에는 어린 아이가 5명이나 있었다.
평소에 나는 아이 많은 것이 인생을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아이 많은 것에 먼저 기가 죽었고 또한 저 아이들을 쫓아내면 평생
마음에 상처로 남을 것 같아서 거기서 또 한번 고민 했다.
그러나 사업으로 한 이상 두 눈감고 집행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접촉을 하였더니
그 채무자는 형 때문에 망하게 되었으며 형은 주먹깨나 쓰면서 사업을 하다가
망하게된 경우이다. 성질을 그렇게 쓰면 돈 못 벌수 밖에 없다.
“ 당시 형은 남의 돈으로 횟집을 하는데 자기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제는 이 집이 넘어가면 동생과 부모를 볼면목도 없다. 강제 집행을 하면
자기는 고기를 잡을 때 봤는데 고기가 칼로 배를 째면 눈을 껌뻑 껌벅 하다가
숨을 거두고 말드라면서 자기는 이제 그 수 많은 생명을 죽이면서 눈으로 그것을
생생하게 보았기에 그런 행위 하는데 전혀 느낌이 없이 할 수 있다. 횟집하는 사람들
칼 놀림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면서 위협을 주는데 ”
생김새도 스포츠 머리에다가 눈은 매섭게 생긴데다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생긴 그 모습은 진짜로 죽일 수 도 있다는 느낌이 나에게 전해져 왔다.
물론 그 사람이 날 우습게보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나도 당시 현직 안00000 을
수 은 대중들 앞에서 손바닥으로 친 사람인데 간딩이가 보통사람은 아닌데도
격하게 나오는 그 사람의 심리 상태가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객관적으로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나는 그래도 그 자리에서 물러서면 경매 사업가로서는 끝장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들어서 그대로 물러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10%의 마진을
보장해달라 그렇게 요구하니 그렇게 한다하고서는 차일 피일 미루는 거였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생각도 사라졌다. 버틸 능력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 건으로
억울하게 집터를 빼앗기게 된 길씨에게 당신이 사라고 했다. 그 사람은
돈을 주고 샀는데 저당후에 구입한 거라서 이미 대항력을 상실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이 구입 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방안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동생의 도움으로 집을 사기로 하고 등기를 넘겨주었다.
그후 소식을 들어보니 아직까지 길씨는 명도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여주에서 농가 빌라를 매도한 후 나는 이천으로 가서 살면서 여주군
가남면의 빌라를 구입하고 가보니 이집도 이사를가고 없었다.
거짓말처럼 일은 잘되어가고 있었다 1361만원에 구입하여 1700만원에 전세주었다.
장호원의 빌라는 사람없는 것 알고 입찰했는데 수도가 꽁공얼어서 수도 고치고
도시 가스로 교체하고 해도 230만원정도 들었다. 920만원에 낙찰받은 것
1700만원에 전세주였다.
그러면서 인천쪽의 빌라가 싸다는 것을 보고 인천의 지하 빌라를 사기 시작했다.
신문에 보니 인천의 빌라가 절반의 절반 값에도 안되게 팔려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끌렸다.
여주의 아파트를 팔고 보증금 500만원에 월30만원짜리 지하 빌라로 이사를 가면서
나머지돈은 인천의 지하빌라를 사는데 써버렸다.
내가 처음으로 인천에서 산 것이 1월인데 그로부터 돈3000만원으로 사고
팔고한 후 지금 남아있는 것이 인천의 지상 지하 빌라 12개가 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부채도 갚아 나갔고 생활비도 썼다.
12월경에 그 농가주택을 팔고 지하빌라에 투자한 결과는 이천시 오천의
빌라를 낙찰 받아서 집에 방문하여보니 옆으로 호스 빼고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경비만 받고서 돌려준 쌍림빌라를 정리하고 여주읍사무소
앞의 이름 없는 지하빌라 1161만원에 낙찰 받아 1500만원에 전세주고, 부천
원종동의 성은주택을 1151만원에 낙찰 받아 1700만원에 전세주고, 그런데 이
물건은 문제가 많이 생겼었다.
이사비용이 모자란다며 미리 달라 하기에 주었더니 약속을 20회 이상 어겼다.
내일은 꼭한다 오전에 약속하고 오후에는 꼭 한다 진짜로 독한 여자만나서
고생했다. 그래서 막판에 강제 집행신청을 하였더니 가스비용40만원과 전기요금
9만원 을남겨둔체로 어느날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그 집을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집은 재건축 안전진단이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에 있기 때문에 그 빌라도
뜯지 않을 수 없다는게 주변 사람들의 진단이다.
그 주변 부동산 사장님의 이야기는 아파트 입주권은 무조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인천 산곡동의 한마음맨션 17명을 제치고 1571만원에 낙찰 받아
현재 살고있고, 3300만원에 팔기로 계약했고,
구월동의 한양빌라9.110.000원 쓴 사람을 이등으로 9.115.000원에 낙찰 받아서
포장마차 하시는 아주머니300만에 25만원 월세주고,
도화동의 실버타운 910만원에 낙찰 받아 급해서 천만원에 전세주고 작전역 옆의
삼우빌라 1030만원에 낙찰 받아서 2천만원에 전세주고,
주안동의 한진빌라 물이 줄줄 세는 집 낙찰 받았다가 재경매 나온 것 요것
7.115.000원 썼다가 사람이 많아서 겁이 나서 1를 7로 고쳐서7.715.000원을
썼더니 웬걸 이등사장님은 7.110.000을 썼더라.
그래도 집행관님들 모르시고 넘어 가시드라...
이글 보시고 집행관님께서 무효하시면 어쩔건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땐
이건 소설이라고 말해야지 거짓말 안하면 못사는 세상인데 난들 어찌하란 말인가.
어쨌든 그 집은 (사실 이거 일급 비밀 인데) 비닐루바를 천정에 사용하여 벽을
뚫고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전법이다. 그 전법을 사용하여 물 문제 해결하여
천만원에 전세 주었다.
자재값이 20만원 들었다. 구체적인 한 이야기하면 내 밥통의 숟가락이 늘어날
것 같아서 더는 말 못해주겠다. 낙찰가의 60% 는 신협에 낙찰 잔금을 대출 받고
내돈은 290만원정도 투자한 물건이다.
그 집에 지금 세 사시는 아주머니 너무 좋은 집을 싸게 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귀신 나올 것 같아서 포기하신 여성 사장님이 버리신 물건을 나는 그렇게 자재값
20만원으로 그 지하빌라의 팔자를 고쳐준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간석동의 신성빌라.. 이것이 투자중 적자를 본 최악의 물건이다.
871만원 주고 사서 이사비 100만원주고 보증금 200만원에 월15만원 월세이다
주안동의 목화빌라 1130만원에 낙찰 받아 서울빌라로 가기 전에 살기 위하여
준비중이고,
서울 대립동의 금부빌라는 현재 낙찰만 받아놓은 상태이고, 전용면적 19평인데
이물건 너무 사랑한 나머지 전번 최저가의 300만원 이상의 접근금지 가격을 써서
아직 잔금을 납부 하지 않은 상태이다.
아니 아직은 못한 상태라는 것이 맞다. 살고 있는 집 판돈으로 잔금을
치루어야 한다.
그리고 **농업형동조합이 저당권을 말소시켜야할 것을 말소시키지 않고 경매에
넣어서 법원을 우롱하였다 법원에서는 등기상 문제가 없으니 경매를 진행시켰고
**농협은 이미 인천지방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고도 상급심에 항소하지
않음으로서 판결에 굴복한 것이라면 법원에 명령을 받아서 저당권을 취소하여야
하건만 그들은 저당권을 말소시키지 않고 경매 신청을 하여서 국민들 아무나
참여 할수 있는 경매를 진행시킴으로서 국민들을 기만하였다.
내가 마침 잔금 넣기 하루 전에 분위기 파악한다고 그곳에 가서 페인트칠을
할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와서 이거 철거 명령 떨어진 집이란다.
경매 계장님도 멀쩡하다는 물건이 철거 소송에서 채무자가 패소한 사건이란다.
**농협은 패소한지 일년이 되어도 저당권을 취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경매를
통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고 하였다 농민들의 피눈물을 짠 출자금을
이용하여 월급이나 충분하게 받으면 그만이라는 농협직원들의 의식이 그
대로 나타나는 증거였다
사실 이러한 일이 잃어나면 우리 경매인들은 그냥 당할수박에 없다
원인무효 소송을 할 때에는 등기부에 그 사실을 등재하지 않고
경매진행시켜서 그경매조차 무력화 시키는 이 제도는 경매인들에게는
쥐약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제도적 모순은 경매사업가들이 정부에 건의를 하여 모순을 제거
하도록 해야 한다.
낙찰자인 내가 먼저 낙찰허가 취소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하자 농민알기를 우습게 알고 고객알기를 우숩게 아는 ** 농협은
20일만에야 취하를 해주었다.
내가 당신들의 고의적인지 무능해서인지 직무유기인지 행위로 인하여
손해 본 것을 보상하여달라고 하자 고릴라 처럼 못생긴 농협직원들은 손해배상
못 해준다 법대로 하라면서 뻔뻔스럽게 나왔다.
그들의 행위는 사해행위였지만 그들은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고 사무실에서
항의하는 나에게 오히려 경찰을 불러서 나를 불량배 취급을 하였다.
열이 나서 농협담벼락에 사해행위하는 농협은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글을 쓰는
과정에 경찰이 와서 말리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법원에 돌아와서 보증금을
되돌려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사건은 그냥 내가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금융감독원에 고발해서
금융기관의 기강을 무너뜨린 부분에 대하여 죄값를 받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이천의 이마트 옆의 지분밭을 1650만원자리 550만원에 낙찰 받아서
사채업자에게 30%이자로 현재도 쓰고 있는 일,
부평구청역 옆 대원세종빌라 1757만원써서 최고로 멍청하게 낙찰 받은 대원빌라는
전세 2천정도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도화 교차로 입구근처에 도시 가스없는 것 확인안하고 비싸게 낙찰받아서
보증금 포기할까 말까하는 것이 현재의 상태이다.
벌서 몇 달되었다고 기강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또하나, (이것은 사실 특급비밀인데) 사람들 묘지는 피하는데 묘지 하나 있으면서
넓은 밭이 있는 것은 돈이 된다.
600만원짜리 감정가의 밭경매 고수 70대 영감님의 독점물을 278만원에 낙찰 받아서
그 분과 붙어서 30만원차이로 이긴 것을,,, 천만원 받으려고 하다가
800만원에 흥정이 되었는데 법무사가 싸게 사셨네요 하니까, 그 이쁜 여자
고객이 깍아 달라고 해서 700만원에 팔아버렸다.
또 그 법무사 그x의 입 때문에 내가 100만원을 손해 보고 말았다.
약3천5백만원 중 이천시 신둔면의 수돗물도 안 나오는 지하빌라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30만원 살면서,.... 두 돌 지난 우리아들 목욕도
제대로 못 시키면서 어렵게 살면서 인천의 빌라가 싸다는걸 듣고... 근 한달
동안 찜질방에 잠자면서 인천법원과 서울법원에 여주법원에서 약 7개월의
시간속에서 이루어진 경매사업의 결과들이다.
참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순간들이었다.
약3.500만원으로 시작한 경매 자금은 원금은 아직 계속 굴러다니고 있고,
생활비와 밀린 이자등을 주고도 집이 열 몇채가 넘는다.
경매로나 가능한 일이고 일반인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다는
경매시장에도 틈새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좋앗던 경매 시장도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이기로 인하여 대중화가
되면서 지난날의 돈벌기 좋은 물반 고기반의 직업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제는 돈벌이가 될만한 것은 아무나 덤비기 때문에,
어려운 물건을 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수원의 2004 -4561(?)이라는 물건이다.
그것은 세입자가 지하빌라를 2천만원에 전세 살면서 2천만원들여서 집수리를 했다고 ,
“ 그 수리비용을 유치권이라는 이름으로 낙찰자에게 받을 것이니 경매인들은
조심하라“ 이런 메시지를 경매시장에 공개하였다.
3500만원자리 물건이 400만원대에 까지떨어졌다.
나는 그물건을 보면서 굶주린 늑대처럼 환장을 하였다.
그 빌라를 건축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건100% 성공이란 확신을 가지면서,
수원에 사는 내 여동생에게 그 물건에 입찰할 것을 권하였다. 동생은 경매는
잘모르지만 지난번 경매를 통하여 자신의 재산을 사기꾼들 때문에 빌라 한
채를 날려버린 아픈 과거가 있는 동생이다.
그 물건에는 세 사람이 참여했는데. 2등은 어떤 유능해 보이는 여자분이었고
한분은 세입자였다. 그 여자분은 느낀데로 전번의 최저가를 넘는 액수로 도전하였다
그 여자분은 물건을 볼 줄 알았고 혹시나 싶어서 전번 최저가 이상으로
안전장치를 하였지만 나는 그 안전 장치의 핀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더
큰 탱크로 아예 덮어버렸다.
그래도 700%의 소득이 보장되는 물건에 나는 몇십만원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분은 수원의 도사라고 하드라... 하긴 혼자서
하다보니 거의 독식을 하다보니 복병이 출현할 것을 미리 예측을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거의 몇 년간 독식한 것이 하루아침에 바낄것인가 그게 그분의 판단이었겠지....
그러나 세월은 변하는 법. 영원한 영웅은 없듯이 새로운 복병에게 그분의
오랜 영역은 그렇게 깨어지고 말았다.
나는 경매를 하면서 수원쪽 사람들 아니 전국의 모든 경매인들은 거의
유치권하면 우선 피하고 보는데, 나는 유별나게 유치권 있는 물건을 보면
환장을 하는 것은, 건축업자 시절에 경매라는 그 두 글자 밖에 몰랐던 사람이
무식해서 당한 것을 두 번다시 당하면 멍청이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피해자의
오기가 발로한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
유치권이란 건축을 해주고 건축비 못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경매진행을 방해하면서 경매진행의 허점을 이용해서 채무를 면탈하려는 의도를
가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경매진행의 허점을 이용하여 유치권을 남용하고 있는데
법원이 그렇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경매의 골치 아픈 물건이기도 하지만 경매에서 최고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유치권 있는 물건이다.
그 사건이 날짜가 되어서 잔금을 납부하고 인도명령을 신청하니 인도명령
신청이 받아드려졌다 그랬더니 세입자가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기달려
줄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다려달라는 것은 변명이었고, 그분은 그 시간에 법무사와 변호사
찾아다니면서 대항력을 가지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것 같다.
우리가 인도명령을 신청하여 판사명령이 떨어지자 돈이 없어서 이사 할 수
없다고 하더니 천만원을 공탁을 걸고 강제집행 정지 신청을 하였다.
판사의 명령이 떨어진 것을 이겨 볼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래도 그 사건으로 끝까지 버터 보려고 하는 그분에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공탁을 걸면 그 집행정지 신청으로 인하여 손실을 본 사람들에게 손실을 보상
하기위하여 법원에서 맡겨두라고 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천만원이라는
거금을 공탁 걸고 말았다.
재판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인데 그 결과에 대하여 경제적 손실이 생길것인데
낙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재판비용을 가압류하여 손해배상 청구하기도 좋은데
자꾸만 그분은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그분의 시간 끌기 때문에 ....
6월 중순에 끝날 것 같은 유치권 신청 건은 그렇게 하여서 7월달에 마지막 심리를
한 단다.
판사는 소유자이자 채무자를 불러서 심문할려고 하는데 내가 볼적에 잘못하면
경매 방해죄로 입건이 될 것도 같은데 나는 재판에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그
부분이 사실 더 걱정이 된다.
세입자 입장으로 보면 2천만원 투자하고 한푼도 못 받는다면 그 마음도 아플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집가격 보다도 더
큰 액수를 투자하고 전세를 살려고 했는지에 대하여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4천만원이라면 아파트 전세를 살고도 남을 돈인데 그 돈을 지하빌라에
투자한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 재판 결과에서 나는 이길 것으로 보는 것은 남들이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아직 진행중인 끝나지도 않은 사실을 쓴다는 것은 망설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경매로 생존을 해야 할 경매 사업가들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담이 될 것으로
보여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쓰게 되었다.
만약 그분의 희망대로 세입자들이 자기가 수리 한후 그 투자액을 낙찰자에게
부담시킨다면 유찰은 수없이 반복될 것이고, 채권자들은 백지 종이만
받아들게 되며 대한민국의 경매제도는 세입자들의 노리개감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원이 그렇게 쉽게 무너진다면 어찌되겠는가?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가짜 유치권은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나는 그 믿음이 있기에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유치권있는 물건을 집중 공략 할 것이다.
난공불락은 없다.
이것이 내가 바닥까지 내려가서 다시 잃어서면서 깨닳은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게 참여했다가 패배의 쓴잔을 마신 분에게 나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그
분들에게는 해당한 돈을 벌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분들이 경매공부를 하겠다면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즐거운 만큼 아파했을 그 분들이지만 어차피 경쟁에서는 이기고 봐야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소신이다. 새로운 것을 언제나 추구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경매사업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
나는 육체적 건강이 허락 하는 한 목수 일을 하면서 경매사업을 할 것이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데 어설픈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기도하고
혼자 잘난척하고 아는척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유능하신 선배
경매사장님들에게 너무나 염치없는 짓이란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한번은 넘어야할 산이니 이산을 이렇게 넘으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날수도있을것이란 희망도 가져본다.
또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있는 한국경매 연구회 회원님들과 노인장 회원님들
그리고 地神의 회원님들 중 인천지역의 회원님들께 특별하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분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경매 사업을 통하여 나는 본인도 생각 못할 정도로 변해 있는 나 자신을 본다.
경매라는 사업이 나를 이렇게 바꾸어놓았다.
좋은 경매 시장의 새장을 열기 위하여 이난을 만들어 주신 굿옥션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그 획기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면 경매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할 것을 나는 믿는다. 그 마음 변치 말고 신나게
해주시길 기대 한다.
조은경매 신나는 경매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인사에 대신하고자 한다.
~~~~~~~~~~~~~~~~~~~~~~~~~~~~~~~~~~~~~~~~~~~~~~~~~~~~~~~~~~~~~~~~~~~~~~~~~~~~
응모자 :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 김 휘 대 님